전쟁의 진화
전쟁의 진화
4세대 전쟁은 국가대 정치집단의 전쟁
18세기말(Charles Rodert Darwin)은,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합목적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다는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온 전쟁 또한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린드(William C. Lind)나 하메스(Thomas X. Hammes)와 같은 군사학자들은 전쟁은 정치, 경제, 기술 및 사회적 변화의 산물로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쟁 양상의 변화
전쟁 양상의 변화로 전쟁진화론자들은 근대 이후의 전쟁을 총 네 개의 세대로 구분하고 있다. 우선 1세대 전쟁은 주공방향에 병력을 집중하여 상대의 균형을 와해시키는 인력전으로서 나폴레옹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이러한 인력 기동 중ㅇ심의 전쟁 양상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지속되었다. 다음으로 2세대 전쟁은 산업혁명을 통해 개선된 무기체계로 1세대 전쟁의 감정인 상대의 인력 기동을 무력화하기 위한 화력전의 양상을 띠었고, 이러한 양상은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나타난 3세대 전쟁은 기갑 및 기계화 부대를 운영하여 화력전으로 고착된 상대의 전선을 돌파하고, 상대의 대응속도보다 빠르게 종심공격을 감행하여 상대를 심리적으로 마비시키는 기동전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전쟁 양상은 2차 세계대전부터 20세기 말에 발발한 걸프전까지 이어졌다. 걸프전 이후로 나타난 4세대 전쟁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국가대 정치집단의 전쟁이 주를 이루어 비정규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화력을 지닌 정치집단은 강력한 기갑 및 기계화 부대를 보유한 강대국과 정면 대결을 회피하면서 전쟁을 장기소모화하여 강대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국민들의 전쟁수행 의지를 파괴하였다.
4세대 전쟁의 특징
3세대 전쟁 형태로 시작한 전쟁도 일정한 순간부터는 4세대 전쟁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새로운 전쟁의 흐름이 되었다. 4세대 전재은 특정 정치집단이 자신의 정치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강대국과 정면대결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전쟁을 장기소모전으로 전개하여 강대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국민들의 정쟁수행 의지를 파괴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기존의 1, 2, 3세대 전쟁과는 전혀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4세대 정쟁이었지만 4세대 전쟁은 국가 대 정치집단의 전쟁이다. 실제로 베트남의 베트콩,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과 탈레반, 체첸반군, 이라크의 알카에다는 국가가 아닌 정치집단이었고, 현재 중동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IS(Islamic State)도 정치집단이다. 즉 4세대 전쟁은 강대국의 정규군이라는 강자와 민병대 성격이 강한 게릴라(이하 저항세력)로 불리는 약자와의 전쟁인 것이다. 다음으로 4세대 전쟁은 적과 전장이 명확하지 않다. 4세대 전쟁의 주체는 강대국의 정규군과 이들에 대항하는 저항세력이다. 저항세력은 일반적으로 정규군보다 전력과 화력이 약하다는 생태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들은 지역 주민들 속에서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정규군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정규군을 지속적으로 유인하여 전투를 벌여왔다. 반대로 정규군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 섞여 주둔국 전역에 분산된 저항세력과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주민들로 인해 작전 시마다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듯 4세대 전쟁에서 정규군은 이전 전쟁과 달리 싸워야 할 대상과 장소를 명확히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보다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항상 수세적 입장에서 작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4세대 전쟁의 목적 달성 과정
1, 2, 3세대 전쟁은 적국의 정규군을 격멸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지만 적의 정규전dp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을 가진 4세대 전쟁의 저항세력은 적의 정치지도자들과 국민들의 전쟁수행 의지를 약화시켜 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따라서 저항세력들은 다음과 같이 정규군의 공포심을 유발하고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과잉대응을 유도하여 여론을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저항세력은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 공격하거나 주민 밀집지역에서 지속적인 소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정규군 공포심과 피해를 유발한다.
공포에 질린 정규군은 기동을 통해 적을 제압하기보다는 화력에 의존하여 적을 제압하려 한다. 이 때문에 주민 밀집지역에서 도발하는 저항세력에 강력한 화력으로 대응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부수적인 피해를 주게 된다.
이러한 민간인 피해를 세계 각 언론에서 미루어 비판이 쏟아지고 결국 정규군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저항세력은 1~3의 과정을 반복하여 정규군의 전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면서 국내외의 여론을 악화시킨다.
전쟁의 어려움
이와 같은 방법은 20세기 이후에 발발한 대부분의 4세대 전쟁에서 적용되었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 공중강습작전에 이어 정글에서 탐색격멸작전을 전개하는 미군을 상대로 베트콩은 소규모 매복전투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 결과 미군의 피해는 점차 증가했고 정글을 죽음의 장소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군은 정밀수색과 같은 기동전보다는 전술항공기와 포병의 화력을 유도하는 화력전투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해였다. 미군은 전장공포로 인해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공격하고, 가역한 화력을 유도하여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었다. 미군 사상자가 날로 증가하는데 더해 미간인 피해까지 발생하자 미국 내에서 반전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승리를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북베트남의 지도자인 호찌민은 베트남 전쟁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공제적인 심리전을 전개하였고, 세계 언론은 민간인 피해를 질타했다. 그 결과 미 국민들은 안방에서 베트남 전쟁의 참혹상을 시청하게 되었고, 미국 내 반전운동은 격화되었으며, 결국 미 정치지도자들은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는 주월미군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리빙룸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여론을 의식한 미군은 43일 만에 전쟁 규모를 축소하고 최단시간 내에 이라크를 안정화화하려 하였지만, 수니파와 군부 등 기존의 기득권층이 중심이 된 저항세력에 의해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미군은 이라크 내의 주요 도시에서 펼쳐지는 게릴라들의 기습공격을 두려워했고, 이로 인해 베트남전쟁과 마찬가지로 기동보다는 화력에 의존한 작전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로학대 사건이 국제사회에 보도됨으로써 미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의심했고, 결국 이라크 전쟁은 베트남 전쟁과 같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기지 못한 전쟁’, 이라크 저항세력의 입장에서의 ‘지지 않은 전쟁’이 되어 버렸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실제로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쟁 이후에 또 많은 정보 데이터가 쏟아지면서 각 국가들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를 지키고자 준비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과 이후는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음 세대의 미래 전을 준비해야 될 수도 있다. 우크랑이나 전쟁이 종전 또는 휴전이 언젠가는 될 텐데 그때 다시 한번 전쟁에 관련된 내용의 글을 정리하여 올려보겠다.